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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내음

봄내음 글 : 박동수 남쪽엔 사과꽃 향기 바람에 띄워 보낸단다 언 어깨 펴고 겨우내 웅크린 고달픔을 목련 나무 끝에 매달고 아직도 시린 햇살을 향해 찬 향기를 내지르고 있다 긴 겨울을 부복만으로 견디어 온 앉은뱅이 꽃은 분 끓이든 속내로 자주색 향기의 주머니 끈을 풀고 살얼음 아직 풀리지 않은 먼빛 어른거리는 초봄의 호수엔 살 떨리는 물결 위를 안개 낀 햇살이 물빛 향기를 돋우며 하루를 접어 간다 20060320

기본 2006.03.27

가을이 가고 오는 길목

가을이 가고오는 길목 글 : 박동수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내 유년의 열정이 화염처럼 타오르고 바람에 활활 타는 불꽃이 나무 잎 물들더니 낙엽으로 구르며 달빛은 하얗게 바래져 가다 시린 바람이 불고 붉은 창가에 노을이 저물어 내리면 차가운 달빛 사이로 마지막 풀벌레 소리 찌르륵 찌르륵 달빛 짜 집어 내리고 하늘은 파랗게 멍들어 가을은 깊어가네 20051107

기본 2005.11.07

달빛

달빛 글 : 박동수 창을 넘어온 달이 빈방의 어둠을 지우고 구석구석 밀어놓은 속옷 같은 세월 하나하나 펴서 횃대에 널어놓았네 속옷 속처럼 얼룩진 세월 회색 빛 죄 많은 삶 내 비켜 설 자리 없네 입으로는 선하고 정의롭다던 세상이 구름 넘어온 달빛에 어둠은 빠져나가고 누더기같이 너절한 흑색의 양심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 설 자리 없는 부끄러운 영들 까만 숲 속으로 숨어드는 소리 소나기처럼 흐르네 20051018

기본 2005.10.18

세월의 아픔

세월의 아픔 글 : 박동수 목각처럼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 단풍잎 물드는 정원에 꽃을 물고 있는 자연석의 이름만 있을 뿐 삶의 손끝에 시달려 인조석이 되어버린 상처 냇물 소리 바람 소리 밤마다 별들이 내려와 부르는 소리 귀를 몸 속에 감추고 길들여 진 구절초 피는 소리만을 듣고 산다 고층 아파트의 손 바닥만한 창문을 기웃거리는 햇빛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며 인조석처럼 깎인 삶의 흉터를 안고 숱한 언어를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숨소리만 내고 있다 바람이 구름을 높이고 하늘을 푸른 물감 칠하면 가을이 오는 소리 쌀쌀한 밤하늘의 별들이 서걱대는 소리 낙엽이 떨어지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우성치는 소리 들어보는 가을날의 하루 20050924

기본 2005.09.24

향 수(鄕愁)

향 수(鄕愁) 글 : 박동수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빛 무리가 눈가를 스치고 가면 내 앞엔 익다 말고 떨어진 풋감을 소금물에 담그고 잿불에 콩 서리 해주시던 어머니의 미소에 조이는 가슴핏줄 가을 잎처럼 떨어져가고 남은 것은 수묵(水墨) 피듯 그리움만 피어나네 눈물 마르면 희미하게 멀어지고 눈물 나면 꿈처럼 다가서는 신기루 같은 수묵 속 미소 억새풀 해치며 다가 간 묘지엔 꿈속 아련한 젖내 속에 낙수 떨어지는 초가집 툇마루 깨어나고 싶지 않은 그리움이어라 20050917

기본 2005.09.17

시인의 사랑

시인의 사랑 글 : 박동수 별 한줌 가슴 속에 밀어 넣으면 파도처럼 밀려 오는 뜨거운 사랑의 밀어들로 별들은 웅성대며 서걱댄다 별의 속삭임이 억제된 거리엔 언어의 단절된 공간 시인은 하늘의 별보다 가슴 속 별들의 언어가 좋다 사랑은 서로 기대고 부딛혀 서걱대는 새 언어들이 있음이여 그래서 언어를 엮는 시인은 참 사랑을 알고 있으리 20070308

몽당연필

몽당연필 글 : 박동수 나는 지금 아주 짧은 몽당연필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요즈음 세대아이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버릇이다. 왜 하필이면 몽당연필이야 하는 거지 그 많은 볼 팬이나 샤프 연필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몽당연필을 넣고 다니는 것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국민 학교(초등학교)를 들어가든 해는 일본의 전쟁말기이다. 전쟁물자가 부족하여 침략국으로써의 최대한의 착취가 이뤄졌고 심지어는 어린아이 놋쇠 숟가락까지 빼앗아가든 시절이다. 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그 당시의 사정으로 구하기 힘든 학용품이기에 그 기에는 빠질 수 없는 몽당 연필이 있었다. 그것도 질이 지금의 연필과는 판이하게 다른 즉 형편없는 지금으로 보면 불량품에 해당되는 것이라 심을 내기 위해 깎아..

기본 200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