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늙은 황소 봄과 늙은 황소 글 : 박동수 나른한 햇빛이 일렁이는 봄날 둑길위에 새김질하는 소리 울컥 세월의 허무함을 느낀다 말없이 순종의 굴욕으로 생명을 담보 받아 멍에를 지고 살아온 세월 허무와 비애 남아있는 것은 흠뿐인 육체일 뿐 아무것도 없다 밭고랑마다 지친 자신의 숨결 인고의 결실은 권력자의 독식이 되고 세월이 끝나는 날 이름도 없이 푸주간의 걸린 항거할 수도 없는 피 흘리는 살덩이 뿐 20100414 기본 2010.04.19
목련이 피는 것은 목련이 피는 것은 글 : 박동수 아직은 종아리 밑을 보채는 쌀쌀한 바람이 성가시게 까칠한 생각을 깨운다 지난 가을에 낙엽과 같이 가버린 그리운 정이 새로워 풀 섶을 해치고 내민 눈(雪)길 찬바람에 떠돌던 차다찬 긴 겨울날의 서러움을 훌훌 앙상한 가지 끝에 걸어 하얀 목련꽃 망울로 넋을 피우고 있음이 20100413 기본 2010.04.13
또 설날 또 설날 글 : 박동수 그믐 밤을 지나 초하루 날 하늘 한 모퉁이가 또 부서져 내린다 한 생애의 하늘 끝에 한 뼘 남은 노을 바싹 마른 풀잎처럼 삭아 내리던 뼈마디 마디 아비와 어미가 비껴가시지 못한 세월 녹슨 함석지붕에 부식된 세월이 부서지는 오늘 설날 푸석한 하늘이 용광로 속 잿빛처럼 붉게 흐르네 20100214 - 음악 - 기본 2010.02.20
세상 사는게 세상 사는게 글 : 박동수 뭐 별일 있을까 돌아 볼일도 없고 발걸음을 때어놓고 보니 어디엔가 끈으로 묶인 듯이 앞으로 가지도 못하네 숱하게 내리꽂는 수직의 아픔을 되받아쳐 가며 각을 세워 처 놓고도 오히려 마음 한 켠에 앙금처럼 굳어가는 상처가 아리다 수면처럼 내리꽂히는 빗살도 흔적 없이 지울 수 있다면 내 마음속에는 지금 평화로운 금붕어가 노닐텐데 한해가 넘어가는 턱이 이렇게 높을까 아직도 기억에 둔 그립고 고운 사람들로 아릿하기만 하네 20100101 기본 2010.01.26
야누스의 일기 야누스의 일기 글 : 박동수 거리는 춥다 찬바람이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핏기 잃은 허벅지는 소름이 일도록 차가워오고 서럽다 종일 허덕이는 삶을 위하여 뒤적여야하는 군고구마 통 한 번도 내입에 넣어보지 못한 군고구마 오늘처럼 추운 날은 배가 부르다 하루하루 붉은 도장을 찍어 누르는 일 수 돈 장부가 아직 여백이 더 많은데 허벅지가 꽁꽁 얼어붙는 밤엔 돈이 더 되는 군고구마 하루분의 일수 찍기에는 여유로워 따뜻하게 행복하다 교회의 청 탑 위 십자가는 점점 금빛으로 변해가고 뱃가죽에 가름기가 수북한 얼굴들이 금빛 십자가 밑에서 아귀얼굴로 소리치는 기도소리는 폭죽처럼 터지는 복만 졸라댄다 군고구마의 맛조차 모르지만 쌀쌀한 거리의 차가움만이 하루의 일수 돈 공백이 줄어드는 작은 바람의 기도는 또 다른 복일까 어둠이.. 기본 2010.01.11
눈(暴雪) 눈(暴雪) 글 : 박동수 조용히 왔다가 가는 당신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뿐히 내리는 만나의 은총처럼 허기진 사랑을 채워주는 줄만 알았습니다 무겁게 무겁게 쌓아가며 누르는 대지는 기다림보다 더 아픈 눅눅한 몸부림을 처야 합니다 조용히 왔다가 가는 당신인 줄로 만 알았지만 쌓여 오는 무게만큼 짓눌린 가슴은 하얗게 바래져 만 갑니다 20100104 기본 2010.01.04
노을 2 노을 2 글 : 박동수 한 낮의 열기를 몰아 노을은 서쪽 하늘을 불태우며 아무도 가고 싶지 않는 황혼 길을 연다 불꽃은 더 붉게 타지만 그곳엔 소방차도 없고 아우성치는 사람도 없지만 타는 불꽃 위로 서서히 나는 새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열심히 날고 있을 뿐 아무도 누구도 그곳엔 가고 싶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노을이 불타는 황혼 길 아쉬운 시간이여! 20190528 기본 2009.12.06
겨울 밤 겨울 밤 글 : 박동수 섬뜩한 소름이 어깨를 조여드는 쓸쓸함 낙엽은 소리 없이 울고 눈이 내릴 듯한 구름 속에서 어설픈 기운 시대의 슬픈 시인이 떠나간 그 날의 발자국이 생각난다 세상이 추워 따뜻한 군고구마나 군밤이 그립다고 뜨거운 맹물만 훌훌 마시고 그대로 얇은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떠나간 그 날의 시인들 설렁이는 골목 모퉁이에 다시앉아 뜨거운 맹물을 마실 듯한 이 밤이 겨울 밤 으스스 떨리며 작아지는 어깨 몸을 움츠려 본다. 20091120 기본 2009.11.20
낙엽이 물들며 낙엽이 물들며 글 : 박동수 바람이 싸늘히 부는 골목 한쪽에 낙엽이 추위를 피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다 시린 하늘에 차가운 별이 껌뻑이고 어두운 밤은 깊어만 가는데 속삭이며 입술을 떠는 잎들의 기다림은 누구일까 초저녁부터 기다림에 차디 찬 얼굴이 빨개지며 가을은 깊어만 간다. Eric Clapton -Autumn Leaves 20081024 기본 2009.10.24
가을에 부치는 訴 가을에 부치는 訴 글 : 박동수 잎이 발갛게 물들어가고 있다 이 설레 임은 그 날 시간을 멈추어 놓고 지나간 바람이었다. 가슴속의 흔적을 송두리 째 쓸어간 바람 빨갛게 물들어 가는 이 밤 오랜 고요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누에처럼 갉아 먹으며 내 심장의 영역을 줄여 간 그 날의 바람이었다. 그 날 당신이 떠나던 With You - Ernesto Cortazar 20091006 기본 2009.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