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입춘과 정월보름

靑鶴(청학) 2004. 2. 5. 14:43

입춘과 보름날 글 : 박동수 어제는 입춘이고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세월이 하수 상하게 돌아가느라 우리의 정겨운 날들이 오는 것과 지나가는 것도 잊고 사는 듯하다. 아무리 시린 삭풍이 불고 눈발이 휘몰아쳐도 입춘이 옷깃을 여미며 우리 곁에 오는 날이면 개울 얼음 밑으로 흐르는 냇물소리가 정겨워 지고 눈 속의 설중매는 물소리에 잠을 깨어 매화의 꽃 봉우리에 입김을 불어 하얀 한 송이의 매화를 피운다. 입춘! 옛적에는 아이들이 정갈한 물을 떠다가 먹을 갈고 깨끗한 붓을 골라 갖은 정성을 드려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서 봄이 오는 대문에 붙이고 정성 드려 문간부터 골목을 쓸고 하던 우리의 풍습이 있었다. 만월의 달이 아직 이른 봄소식인지 싸늘하게만 느껴지는 날 전날 밤에 수수깡을 모아 보리 모양을 만들고 그걸 잿간에 꽂아 두었다가 보름날 새벽에 나가서 도리깨로 타작을 하며 올해의 풍년을 외치든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농토 없는 이 서방은 오곡밥을 짓기 위하여 새벽같이 산에 올라 마른 솔가지 한 짐 해다가 우리 집 부엌 앞에 내려놓고 오곡 쌀을 몇 되 박 갖고 가는 것을 이 때가 되면 나는 보고 살았다. 가난하든 시절 그래도 보름이면 모두가 방법을 다해서 오곡밥을 짓고 부름을 깨든 시절 풍부한 재물은 없어도 마음에든 것은 풍족한 아름답고 맑은 인심. 그래서 그 해에 뜨는 달은 맑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 웃는 달을 향해 해맑은 소원을 빌었고 가슴통이 불룩한 처녀들은 뉘 볼세라 
울타리 뒤에서 나무에 걸린 달을 붙들고 가슴 조이며 소원을 빌든 아름다움이 
있든 흘러간 세월의 보름날. 이젠 그런 달은 볼 수 없고 시간마다 흘러나오는 
너, 나 누가 더 잘 잘못이다 찢고 물고하는 피 비린내 나는 정쟁의 소리만 높아
가고 누가 누굴 죽이고 어떤 놈이 얼마나 해먹었단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소리뿐 밤에 뜨는 저 달이 즐거운 웃음의 보름달이 아니라 찌그러진 
슬픈 달로 뜨고 있음이 명백한 대 보름 언제나 이 세상에 나보다 네가 더 중하고 
너보다 내가 못남을 시인하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사는 세상으로 될 수 있을까? 
오늘도 들려오는 매스컴의 슬픈 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보름달에게 미안한 
마음 달래며 올 한해라도 아름답든 옛 시절로 돌아가는 해가 되어진다면...
허망한 기원을 해 보면서 몇 마디 푸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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