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보 리 밭

靑鶴(청학) 2004. 2. 17. 20:28

 

보 리 밭


                                                                                           글 : 박동수


수락산 중허리에서 희미한 안개가 피어 오르는 것이 어느 듯 깊은 겨울은 어디론가 
제가 있을 곳을 찾아갈 채비를 끝내고 틈새로 봄기운이 다가온 징조 인듯하다.
희미한 안개위로 비치는 태양의 색갈이 연 초록의 봄 색깔로 물들어 가고 겨우내 
몸살 앓든 보리엔 연두 햇살이 파릇한 웃음을 웃는듯하다. 한낮에 떠돌고 싶은 
아지랑이는 한가한 햇빛에 아양을 떠는 하루다. 언젠가 스물 스물 자란 보리는 대궁을 
만들고 곧 봄의 전령으로 우리 곁에 오랜 추억들을 싣고 하나하나 싹의 결실을 보여 
줄 것이다. 보리밭. 외국이든 한국이든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같은 것 
같다. "반 고호"는 말년에 태양 밑에 물결치는 보리밭을 그린 명작을 남겼고 그 또한 
넓은 보리밭 한가운데서 한발의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슈베르트"는 비련의 영화 
"미완성 교향곡"에 보리밭의 정경을 넣었다.
한국의 보리밭 고호의 비극 같은 귀족적인 것이 아닌 또 다른 비애가 숨어 있음은 
우린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우리의 조상들이 겪든 
보리 고개, 가난의 추운 겨울을 넘기고 나면 추위보다 더 무서운 배고픔이 푸른 보리 
싹과 함께 다가 오든 우리아버지 어머니의 세대에 있었던 비극이 보리밭에 엉키어 있다. 
해방되기 전 일본이 우리의 모든 것을 착취하여가고 남은 거라곤 밭에 이제 겨우 
여물어가는 파릇한 보리이삭 뿐 그 보리를 베어다가 푸른 낱알이라도 만들어 허기를 
채우려던 보리 고개의 비극이 보리밭에 담겨있다.
그래도 견디지 못한 우리 내 조상들은 괴나리봇짐에 고향을 떠나 만주로 떠나든 시절, 
그 후손들이 지금의 중국 동포다. 내 먼 촌수의 형님은 보리밭에 엉킨 숱한 에피소드
(스캔들)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어디든지 많은 장소가 있지만 
그 시절은 남 여가 비밀로 애정 행각을 할 장소가 없다. 겨우 생각한 것이 보리밭 
고랑이다.그 형은 보리밭 고랑에서 동네 처녀와 연애하다 동네에서 쫓겨나 만주로
 떠나더니 해방이 되어 돌아오든 때는 아들 둘을 데리고 나타났든 그 시절 보기 드문 
연애 소동도  보리밭에서 있었다. 하모니카 소리에 쫄딱 반한 권 부자 댁 처녀는 보리
밭에서 허물어지고 복에도 없는 만주 땅을 구경한 셈이다. 결국에 그 유명한 연애사건
으로 이룬 사이가 중년이 다되어 계 파동에서 바람난 아내로 인해 이혼의 길을 간 
것도 보리밭에서부터 생긴 파란 만장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땐 보리밭에서 생긴 
아이란 말이 있어 그 아이는 어느 몸 구석에 초록색이 물들여 있다는 우스개도 있었다. 
이젠 보리밭 보기 드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보리 고개는 아예 없어졌으니 그 아릿한 
슬픔의 세월을 누가 기억해 줄 사람도 없다. 먹기 싫어 투정을 하던 보리밥, 쌀밥을 
먹고 사는 것이 소원이든 그 시절의 보리밥은 이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쌀밥
보다 비싼 값으로 되었다. 쌀밥 먹여 준다던 김일성도 죽고 아직은 이 밥을 먹지 
못하는 이북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보리밭의 기억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지워져 가는 것이다.
일본이 패망해 가든 해 봄은 유난히도 배고픈 시절이었다. 집집이 다니며 어린아이가 
사용하는 놋쇠 숟가락도 뺏어가고 대나무로 만든 숟가락으로 대치해주든 일본 놈의  
인심이(?)있었지만 배고파 겨우 공부를 하던 아이들을 산으로 들로 보내서 산에 간 
아이들은 소나무 옹이를 따게 하였고 들로 간 아이들은 고철을 줍거나 버드나무
열매를 따게 하든 악착같은 왜놈들. 보리 고개에 굶주리든 조선 사람을 죽이려 
들든 시절 보리밭은 유일한 삶의 끄나풀 이였다. 산에서 소나무옹이를 따서 가마니에 
넣어 짊어지고 오다가 보리밭 길에서 배가 고파 힘이 없는 손으로 보리 싹을 비벼서
먹다가 잠이든 체 귀가를 못하여 온 동네 사람들을 횃불을 만들어 밤중에 찾아 나서서 
보리밭에 쓰러진 아이 찾기 일도 이 시절 배고픈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다. 그 옹이에서 
나오는  진으로 비행기 윤활유를 만들고 버드나무 열매에서 얻은 솜은 비행사들의 
물에 뜨는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사적 착취를 보리밭 추억 속에 묻고 살아온 
한 많은 우리의 선친들이다.일본이 마지막 발악 할 때의 일이다. 그것 또한 우리민족의
비극 이였다. 공출이라는 명목 아래 생명을 연장하려는 보리쌀 몇 되라도 싹쓸이해가고 
배고픈 이 나라 백성에게는 만주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를 보내서 먹게 했으니 
그 뱃속에 오죽 설사병이 잘 났을까 상상이 될 것이다. 지금은 풍요한 세월. 그 모든
것이 한낱 꿈속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조상들을 그 무서운 가난에서 생명을 연장해 
준 것도 보리밭의 기적이었다. 
그 축적된 슬프고 아픈 상처들을 지닌 체 피땀으로 이기며 이 나라를 만들어 논 귀한 
선조들의 고마움을 우린 알고 살아야 할 듯도 하다.이제 얼마 있으면 3.1절이다.독립을 
위해 고픈 배를 조이면서 일본을 향해 만세를 부르든 봄이다. 보리 밭 이랑 넘어 그 
소리를 들을 줄 안다면 우리는 이 나라에 살 만한 백성이 되겠지.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를 지혜롭게 살려고 한다면 
보리 고개로부터 귀중한 생명을 연명해 온 조상들의 보리밭의 귀중한 과거를 익히
아는 백성이어야 하고 미래를 아름답게 후예들에게 남겨주고 싶다면 현재를 참신하게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린 어떠한가? 보리 고개를 
겪든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이웃과 민족을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너도 없고 나라도 없는 파렴치한 오직 나 외는 알려고 하지 않은 
백성으로 변해 가는 것을 우리는 피부로 느낀다. 푸른 물결이 너울거리는 보리밭 가에 
서서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우리의 선조들께 무어라 말 할 것인가?. 부끄러움이 있다면 
자숙하는 마음으로 3월이 오기 전에 마음을 바꿔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3월은 치마저고리에 보리밥 덩이를 먹으며 독립 만세를 부르든 만세의 달이다. 3,4월 
봄날에 우리도 의미 있는 만세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미 있는 만세를 
의미 있는 만세를.......  


                                                                                                          20040215

- music -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른 봄이거늘 !  (0) 2004.02.26
자 화 상  (0) 2004.02.22
시 인  (0) 2004.02.10
입춘과 정월보름  (0) 2004.02.05
성벽과 울타리  (0) 200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