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날 궂은 날 나의 일기

靑鶴(청학) 2004. 5. 12. 22:25

 

날 궂은날 내 일기

     
                                  글 : 박동수


 내 고향 (1편)
샛바람이 세게 부는 날
파도는 어깨를 들먹이며
모래 불을 때리고
가벼워 진 모래는 나를 향해 몰아오며
어리석은 놈
시(時) 날도 모르며 살았는가?
네가 살든 옛집은 신축에 부셔나가고
좋아하든 해당화는
공해에 멸절 되었는데
그 긴 세월 무얼 하다가
이제 여길 고향이라 찾아 든 건가

그리운 사람들은
모래로 빚은 묘지에 둥지 틀고
미루나무 울타리는 어딜 가고
보이지 않은 바람벽만 
세월을 싸고 있지만 골목 길섶에는
잎 넓은 토란이 웅성대는데
싸 들고 간 내 꿈 어디에도 둘 곳 없어
허둥대며 돌아보는데
정지 문 열고 허리 굽혀 나오는
늙은 어머니 세월이 이렇게 깊었을까
눈물 속의 환상


쇠꼬챙이 길게 갈아

개구리 등허리 찍든 날
밤마다 섧게 우는 개구리
새끼 찾는 것을 모르고
내일의 새 창 날을 꿈꾸며 

잠자던 세월
나는 이제 개구리처럼
밤마다 울며 어미 찾는
개구리보다 못한 놈
흙으로 채운 산막 묘지엔
내 어미는 감은 눈에
눈물 감추고 흙으로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것은 어설피 싸온
내 허망의 꿈뿐이네

오월의 어둡게 궂은 날
곡간 방 쌀 섬엔 밤인 냥
구멍 뚫는 생쥐소리 
어디선가 고소한 콩 볶는 냄새
나들이 간 어머니 벌써 오셨네
날 궂은 날 볶은 콩 냄새에
툇마루 밑에 축 늘어진 장 닭 
콩 냄새에 활기 찾고
시큰거리는 내 코는 어느 듯
정지 문 앞에 와 있네

어미는 없고 성냥 곽 같은
아파트의 암벽
내 콧등의 시큰한 슬픔이
대낮 깜빡인 오수가 원망스럽다

                            20040512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시아 꽃  (0) 2004.05.22
댄 서  (0) 2004.05.20
결 별  (0) 2004.05.10
가 는 길  (0) 2004.05.03
비 온후의 오월에  (0) 200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