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몽당연필

靑鶴(청학) 2005. 7. 27. 01:10
      몽당연필 글 : 박동수
      나는 지금 아주 짧은 몽당연필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요즈음 세대아이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버릇이다. 왜 하필이면 몽당연필이야 하는 거지 그 많은 볼 팬이나 샤프 연필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몽당연필을 넣고 다니는 것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국민 학교(초등학교)를 들어가든 해는 일본의 전쟁말기이다. 전쟁물자가 부족하여 침략국으로써의 최대한의 착취가 이뤄졌고 심지어는 어린아이 놋쇠 숟가락까지 빼앗아가든 시절이다. 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그 당시의 사정으로 구하기 힘든 학용품이기에 그 기에는 빠질 수 없는 몽당 연필이 있었다. 그것도 질이 지금의 연필과는 판이하게 다른 즉 형편없는 지금으로 보면 불량품에 해당되는 것이라 심을 내기 위해 깎아야 하는데 칼을 대면 나무의 질이 동질이 아니기에 뚝뚝 떨어져나가 제대로 되는 게 아니고 흑연 심은 딱딱하여 침을 바르며 쓰지 않으면 잘 쓰이지도 잘 보이지도 않은 것 들이었다 공책의 지질이 재생종이로 되어서 시커먼 색에 약해서 그 몽당 연필이 두 번만 지나가면 찢어져 구멍이 생기는 것 들이지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오고부터 바뀌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귀하디 귀한 연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팬의 대명사처럼 군림한 파커 만 연필, 연필이 물밀듯이 들어오고부터였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은 세월에 볼펜의 시대 되고 깎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벗어 나서 샤프연필이 나오고 그런 것도 불편하듯 지금은 푸러스팬 이라든가 하는 아주 편리한 것들이 쏟아 나왔으니 그 몽당연필이야 잊혀 진지 오래여서 지금의 세대에선 거의 생각 속에 끼어들어 있지 않은 낯 설은 명사에 하나일 것이다. 어느 날 책상 설 합 깊은 곳에 정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상품으로 선물로 받아두고 쓰지 않은 천대를 받는 연필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몇 다즌이 들어 있어 "이거 어떻게 된 거야"물론 아이들이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아 외면하고 쑤셔 넣어 놓고 잊어버린 것 들 이였다. 그 연필 꾸러미를 들고 있는 내 머리 속에서는 반세기전으로 돌아가 있고 그 궁상맞은 세월 속에서 귀하고 귀했던 연필 하나를 칼을 찾아 깎고 있었다. 그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무의 재질이며 향긋한 냄새가 코 속으로 스며 들며 하염없는 긴 세월 동안 잊고 살아온 서글픈 추억의 역류 속으로 빠져가고 있었다. 풍요 속에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 들이 있어서인데 우리는 그 밑거름이 된 시절을 잊고 아니 잊어버리고 싶어지지만 그때 그 질 떨어진 몽당연필을 손에든 사람들이 오늘의 이 풍요한 세월을 설계하고 그 설계를 후대에 남기려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옳은 예의가 아닌가 싶어진다. 그 때 사람들과 몽당연필의 고마움을 마음에 간직하는 우리들이라면 세대의 격차 없는 부드럽고 존경과 예의를 아는 국민이 일거고 이렇게 서로 아웅다웅 싸우는 어지러운 그리고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의 예의를 저버리는 세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연필 하나를 잘라서 깎아 주머니에 넣은 것이 내겐 없어서 안 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지하철 출근을 하기에 모든 책들을 거의 지하철 안에서 읽는 편이다. 메모하기에는 주머니 어느 구석에도 들어가 있을 수 있는 몽당연필이 안성맞춤이 되어 지금은 없어서 안 될 나의 필수품 즉 시공을 초월한 40년대의 현상이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떠 오르는 시상들 언뜻 생각나는 시어들을 책 빈 공간에 채워가는 몽당연필이 나에게 오만 가지 상념(傷念)들을 해소 버리고 지금 나와의 격차 없는 시간에서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같이 오르고 있다. 200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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