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있는 곳

노스탤지어

靑鶴(청학) 2009. 6. 18. 10:26
            노스탤지어 글 : 박동수
            위층 욕조에서 물새는 소리가 밤새도록 나를 낙수물 떨어지는 고향 초가집으로 보낸다 감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끔은 천둥소리처럼 변하여 생감으로 떨어지고 떫은맛 속에 입안 가득한 떨떠름한 혼탁이 꿈속의 나를 당황하게 하는 그날
            종로 광장에서 악을 쓰는 촛불시위 군중의 소리가 못줄을 대어놓고 진흙탕 논바닥에서 소리소리 치며 부산하게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모종이 녹색의 양탄자같이 파란색으로 푸른 내음을 뿜어내던 앞 들판 나는 불모의 시내광야*에 있을 때도 나의 꿈이 되던 그 곳
            차도르*가 바람에 펄럭이는 순간 까무잡잡한 색깔 미녀가 땀방울 흘리는 열대의 슬픈 눈망울이 내 가슴속을 헤집어 추운 겨울날 언 개울가에서 새빨간 손을 불며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던 그녀의 기억이 열대와 혹한사이를 방황하던 생각의 늪이 돌아가야 한다는 불변의 이치에 꿈으로 유영하든 세월이
            20090609
      시작 노-트 노래를 잊고 산 삭막한 세월이 참 오래었다. 그래서 아직 나는 노래가사를 다 고이는 노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어쩌면 조금씩은 되살아나 유행가 몇 곡은 외울 수 가 있었는데 다행으로 생각 한다. 어제 밤 위층에서 집을 비우면서 욕실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떠나는 바람에 밤새도록 물 흐르는 소리에 잠을 설치며 몽롱한 꿈속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돌아가기 싫은 영상들 속으로 해매이기도 했다. 밤새도록 흐른 수돗물 소리에 사람들은 우선 물 값이 많이 나오겠다는 생각 부터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고향집 부엌 앞 감나무 잎에 떨어 지는 빗소리와 땡감 떨어지는 소리로 밤을 지새웠다. 하루도 쉴 날 없이 매스컴에는 악을 쓰는 종로거리의 촛불시위 소리에 나는 앞들에서 모심기하던 옛사람들의 음색 없는 꽥지르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모심은 자리에 자란 푸른 양탄자 같이 자란 초록의 넓은 들판을 보며 즐거워하던 그 날의 사람들과 비교도하고 차도르*가 펄럭이는 순간에 본 사막 여인의 얼굴에 슬픈 수심을 훔쳐본 순간 그 큰 눈망울 속에서 뜨거운 열대의 일기 속에 있으면서 왜 살을 에는 겨울날 개울에서 빨래 방망이를 치던 그녀의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의 꿈으로 유영하는 세월이 언제고 돌아가는 이치에 있다는 것을 알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 있다. 그것이 현실과 상반 되는 모양새가 되어있을지 라도 변할 수 없는 이치인 것이다. 그 곳이 어디이던 간에 초가집이 함석집으로 변하고 그것도 흔적 없이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버렸다 해도 그건 현실일 뿐이지 내 원천적 변화는 아니다. 내 고향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가끔 지나는 길에 옛적 내가 살던 집을 찾아 보면 이미 그곳에는 옛집은 없어지고 어수선한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버린 후이다. 그런 현실의 존재로써는 내 영혼을 잠식할 만한 근원은 아니다. 그기 사람들 역시 현실의 나와의 인연인 것뿐이다. 어수선한 현대식 건물처럼 말이다. 향수란 현대의 물질적 존재의 것보다는 영적인 요소들이 더 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의 외가 집도 같은 곳에 있어서 들려본다. 기와집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와집 외가 집이 아니다. 뒤편에는 소나무가 서있고 앞마당 퇴비장 옆 울타리에 한 그루의 토종 복숭아나무가 열매를 달고 있을 때 쩍쩍 갈라진 복숭아를 따먹던 초가집인 외가다. 현실보다 내 영혼이 침식되어지지 않은 그 곳 그런 향수의 덩어리. 모세의 출 애급을 하려는 그 근본은 무엇이던가 생각에 잠겨 본다. 하루거리도 안 되는 가나안을 향해가는 발걸음 광야에서 40년을 해매며 가야하는 그 발걸음은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다.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 온 당시의 유대인은 아무도 가나안의 기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저들의 땅을 향해서 역사에 한번뿐인 대 장정을 한 것이다. 오직 신이 준 그들의 땅 바로 조상들의 영혼 속에 잠겨 있는 고향을 찾아 수 십 년을 사막의 고혼이 되어가는 이웃을 보면서 찾아온 황무지 같은 곳이었다. 환무지 같은 땅을 향해 얼마나 많은 향수에 밤을 헤 매임 이였을까 나는 지금 요단강 이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 건너 땅을 쳐다보며 그들의 소용돌이치는 영혼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나의 영혼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말씀의 기록에서 읽은 본향을 위해 꿈으로 유영하며 출 애급의 무리들처럼 70년의 생의 광야를 걸으며 영혼의 고향을 향하여 고행을 인내 하면서 한편으로 우주 공간에 잠재되어 있는 소리들로 인하여 나 하나의 고향과 처음 느낀 사랑의 존재를 향하여 향수의 세월을 갉아먹고 있다. 다만 모든 것이 변하여도 내 영혼이 돌아갈 자리와 나만의 그리움의 종식할 자리 매김한 원천이 변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안드레 타르코프스키의 돌아갈 수 없는 러시아의 차가운 조국을 향한 마음처럼 나의 아주 허접한 고향을 향한 꿈 그리고 아주 조잡한 처음사랑을 알았던 꿈을 아파트 창밖 하늘을 흐르는 구름위에 실어 보내면서 말이다. 어디엔가 약 다리는 냄새가 난다. 아마 약방 아가씨를 향해서 첫사랑을 안 영혼이 이 아파트 어느 층에 있다면 이 냄새로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스탤지어의 마성에 물들어서. 이제 노래를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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