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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運命)

靑鶴(청학) 2017. 3. 25. 11:26

 

운명(運命)


                           글 : 박동수


(1)
어디에든 꽂아 두어도 그는 
언제나 떠나가는 
바람처럼 떠도는 것이
태어났다고 하는 날부터
비 맞은 속옷처럼
찰싹 붙어 있는 놈이다
꽃피는 봄 길에 서 있을 때
따스한 봄 햇빛을
온 얼굴에 스치게 하여
종일 봄 기운처럼
아늑한 행복으로 명상 속에
구름을 타고 날게 한다


(2)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에
웃기도 하고 눈물로 슬퍼하며 
몸부림도 치게 한다
초라한 생명으로 태어나
항상 꿈을 먹고 살거나
척박한 들길에 핀 노란 민들레처럼
별이 되는 꿈으로 씨앗을 날려
별이 되어 반짝이고
별이 되어 눈물을 흘리고
세월처럼 어느 날
파란 가슴을 내민 나팔꽃이 되어
검은 리본을 단 나팔수로
긴 장송곡을 연주케 하기도 한다


(3)
꽁무니에 달고온 말(言)에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한 움큼의 행복 소식이 온다던데
웃을 사람은 이미 떠나고
풍문(風聞)은 찢겨진 창호지
언제나 좋을 것만 같았던 믿음은
바람이 되어 
그리운 사람들 얼굴얼굴의
기억만 흔들어 놓고
운명이 되어 버린 것을
해송 가지 끝자락에 붙은
솔방울처럼 잔잔한 바다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너를 따라 어디로 갈 건지
가물한 나무 밑을 내려다 본다


(4)
더럽게 으쓱한 구석에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움츠리기를 익힌 너는
어느 날 구름이 도는 모퉁이에서
주워 든 희망을
봄 마다 핀 들 꽃송이에
하나씩 꽂아 놓아
꽃은 자유를 얻은 듯 하늘을 날고
봄 꽃이다가 가을이 되더니
찬 바람 몰고 와 
들꽃동네를 쑥대밭을 만드는
처절하고 치한이 더만
그렇지만
네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이
황급히 그 길을 날아가네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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